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넷향기 동영상

넷향기 동영상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역사 외국으로 나간 경우

2013-08-15 04:00 | 추천 0 | 조회 31

지난시간에 이어서 최근역사에서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언급해야겠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국제결혼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이다. 학식과 교양을 두루 갖추고 더구나 부유한 집 셋째 딸이었다. 이승만 박사는 한국최초의 미국 박사학위자로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미국에서 호소하며 독립운동을 하고 다녔다. 1934년 뉴욕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당시 이승만 박사는 59세. 신부는 34세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소 근검절약정신과 한국음식솜씨 등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여인이었고 한국을 사랑했다. 이렇게 우리나라로 시집온 경우를 말씀드렸는데 거꾸로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으로 가 명성을 날림과 동시에 그곳에서 자손을 퍼뜨린 경우도 있다. 이게 다 다문화이니까. 먼저 일본천황의 역사는 백제 무열왕의 자손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의 기자회견 때 간무천황 즉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열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을 서슴없이 한 바가 있다. 그 이후에도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한국과 일왕가의 관계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작년 9월 20일자 보도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을 하자 천황은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과 한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 양국의 우호를 위해서라면 현지(한국)에서 사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우리 선조들 중에도 중국 황후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고조영과 고영이 대표적인 일물이다. 고구려에서 북위로 이주한 고조영은 6대 황제 효문제의 후궁이 됐다. 고조영은 아들이 태자에 책봉된 뒤 외척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 태자의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자귀모사’(子貴母死)란 고대 중국의 관습에 따라 죽음을 당했고, 훗날 황제에 오른 아들 선무제에 의해 황후로 추존됐다. 또 다른 고구려의 여인이자 고조영의 조카였던 고영은 선무제의 황후였다. 당시 고씨 가문은 북위 황실과 복잡한 겹사돈 관계를 맺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태자로 책봉된 효명제는 고영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고영은 ‘자귀모사’ 관례를 내세워 태자의 친어머니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발 앞서 효명제의 친어머니가 황제의 친위대와 연합해 거사를 일으켰고, 고영은 황후에서 비구니로 전락한 뒤 살해됐다. 둘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런가하면 중국 원나라의 황제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는 고려의 공녀 중 한명이었다. 기황후는 공녀로 뽑혀 1333년 고려 출신 환관이던 고용보의 주선으로 원 왕실의 궁녀가 되었다. 당시 원나라 왕실에는 고려 출신 환관들이 많았다. 이 기황후는 황후의 자리에 오른 것에 그치지 않고 황후가 된 이후 37년간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여 원나라와 고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분명한 것은 기황후라는 존재가 14세기 말 고려와 원나라의 역사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감사합니다.

목록

#

등록

관련영상

추천하기 스크랩 SNS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