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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멸망원인은 내부에 있다 - Ⅱ

2014-04-27 04:00 | 추천 0 | 조회 40

통일 신라는 우리나라 한반도를 기준으로 볼때 좀 불안전한 통일이긴했지만 최초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질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 신라가 멸망한 원인은 내부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패망시키고 676년에 당나라까지 몰아내고 통일을 하고 난 다음에 936년에 멸망을 합니다. 그러니까 260년 정도 지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고 100년 정도 지난 8세기 후반부터 통일 신라는 굉장히 귀족 권력 다툼이 심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지방 호족들이 발호하기 시작하고 해상 세력들이 성장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까 36대 왕인 혜공왕은 귀족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혜공왕은 무열왕의 직계였는데 살해를 당하면서 직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100년 정도가 지난 9세기 후반에는 혼란이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51대 왕인 진성여왕 때는 귀족부패, 사치, 향락도 더 심해지고 세금이 제대로 걷어지지 않게 되면서 국가운영에 문제가 생깁니다. 거기다 흉년, 전염병이 생기다보니 농민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55대 왕인 경애왕 때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이 쳐들어 옵니다. 경애왕은 결국 자결을 하고 견훤은 경애왕의 집안 동생인 김부를 왕위에 앉힙니다. 이 왕이 통일 신라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입니다. 56대 경순왕이 도저히 국가를 운영할 수 없어서 천년사직의 신라를 왕건한테 그대로 가져다 바칩니다. 그런데 후백제 멸망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백제는 후고구려, 신라, 후백제 삼국 중에서 가장 강건했던 국가입니다. 그래서 후백제는 견훤이 900년에 세웁니다. 견훤은 원래 경상북도 상주 출신입니다. 그때 서남해안을 지키던 해군 무관이었습니다. 해상세력들과 도적떼들의 무력 세력들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나주(지금의 전주부근)를 거쳐 광주를 점령한 후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웁니다. 견훤은 굉장히 강건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를 공격합니다. 신라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왕인 55대 경애왕을 공격해서 자결을 시킵니다.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을 견훤이 지명해서 왕으로 세웁니다. 이것을 보고 신라와 백제가 통합이 되면 결국 후고구려가 위험해지니까 이때 왕건이 신라로 쳐들어 왔는데 왕건이 견훤한테 혼나고 다시 돌아갑니다. 이렇게 견훤의 세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가 견훤이 행복했을 때입니다. 견훤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견훤이 넷째 아들인 금강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첫째 아들 신검, 둘째 아들 양검, 셋째 아들 용검이 힘을 합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견훤을 지금의 전라북도 금산사에 유패 시킵니다. 얼마동안 그곳에 유폐 되어 있다가 견훤이 탈출을 해서 왕건을 찾아갑니다. 바로 어제까지 적장이었던 상대방 군주인 왕건을 찾아가 몸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왕건과 함께 후고구려 군사 10만 명을 이끌고 자기가 세웠던 나라인 후백제를 공격합니다. 이 싸움에서 세 아들인 신검, 양검, 용검이 다 죽고 맙니다. 견훤은 이 울분을 이겨낼 수가 없어 세 아들이 죽고 난 다음에 등창이 나서 결국 견훤도 죽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 신라, 후백제 같은 나라들이 왜 망했는지를 살펴보면 외부 공격에 의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결국 조직의 내부에서 이미 균열이 일어나면서 멸망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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