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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을 내는 베품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다

2013-01-24 04:00 | 추천 0 | 조회 15

요즘 기업광고를 보다보면 어디에 기부를 했다. 기부를 하는 00회사, 00기업, 00그룹의 광고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나간 광고는 기부를 받은 입장에서 이렇게 기부를 받아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광고내용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광고를 접할 때는 조금 헷갈립니다. 분명히 좋은 일이기는 한데 좋게 만은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돕는다. 기부한다는 것은 과거하고 지금하고는 조금 모습이 달라집니다. 예전에 농촌공동체일때는 향약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것입니다. 이문열 선생님이 쓰신 소설 중에 아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가라는 소설에 보면 농촌 공동체의 모습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마을의 어른이 있고 어른을 중심으로 양반그룹들이 있고 그 바깥동선으로는 일반 상민들이 있고 그 바깥동선에는 머슴들이 있고 그 바깥동선에는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바깥동선에는 얻어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양반 어른부터 시작해서 얻어먹는 사람들까지가 그 농촌의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그 중심부터 동선 바깥 끝까지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합니다. 원심력은 배타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있고 양반이 있으면서 상민들을 무시하고 머슴들을 무시하고 머슴들은 불구자들, 얻어먹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이게 어떻게보면 원심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구심력은 만약 양반 어른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면 양반들만 모여서 음식을 먹고 양반들한테만 상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민들한테도 나오고 머슴들한테도 나오고 심지어는 마을에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한테도 한상이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차별과 동시에 포용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농촌공동체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것이 개인적 관계, 농촌공동체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 또는 은밀한 관계 이런 관계에서 작용을 했는 데 오늘날에는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예 광고수단으로 쓸 정도로 드러 내놓고 하는 기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라는 종교에서는 기부를 어떻게 보느냐 하면 불교에는 보시(布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시(布施) 베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6가지 일을 해야됩니다. 그것을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합니다. 1. 보시(布施) 2. 지계(持戒) 3. 인욕(忍辱) 4. 정진(精進) 5. 선정(禪定) 6. 지혜(智慧)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해야될 6가지 일중에서 첫번째로 보시를 내세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는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 세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재시는 다른 사람들한테 재물을 베푸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법시는 좋은 말씀을 해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 힘이나는 말씀을 해주는 것입니다. 무외시는 두려움이 없도록 쉽게 말하면 친절함을 베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도와주거나 좋은 진리의 말씀을 해주거나 친절하게 대하거나 세 가지가 보시에 해당됩니다. 세 가지 베품을 다른 사람한테 베풀어 놓고 내가 베풀었다고 생색내는 것을 유주상(有住相)이라고 합니다.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을 무주상(無住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라고 하면 내가 누구를 도와줘놓고 내가 누구를 도와줬어 하면서 방송하고 다니는 겁니다. 아니면 도와줬다는 것을 광고수단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는 어떻게 되느냐 내가 베품을 하고 누구를 도와주고 그것을 생색을 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이미 보상을 다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보상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복이 다 빠져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누구를 도와줘놓고 일체 생색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나중에 거기에 대한 대가를 시간이 지나면서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를 무루복(無漏福)이라고 합니다. 세어 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보시를 한다면 재시를 하던 법시를 하던 무외시를 하던 그것을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무루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을 다른 말로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 합니다. 세 개의 바퀴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누가 베풀었는지 - 시작, 무엇을 베풀었는지 - 시물, 누구에게 베풀었는지 - 수자 이 세 가지를 내가 베품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를 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보시, 진정한 베품을 했다고 불교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음덕(陰德)을 베푸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음덕을 베푸르라는 이야기는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물질을 물려준다는 것을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좋은 가르침이 기록된 책을 물려준다 책 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과 책을 물려줘서는 그게 별로 물려줄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덕 주변에 내가 계속 베풀고 좋은 일을 하면 그것이 내 자손한테 큰 덕이 되어서 큰 복이 되어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음덕을 베풀라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색을 내고 안내고와 상관없이 기부하는 것, 베푸는 것 자체는 매우 훌륭한 일이고 진짜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플러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삼륜청정의 보시 정신까지 같이 더해진다면 그것은 더 없이 훌륭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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