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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학문의 관계

2012-12-31 04:00 | 추천 0 | 조회 13

많은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굉장히 증오하거나 돈에 굉장히 집착하거나 그래서 돈과 사람의 관계는 애인관계와 비슷합니다. 사귈때는 죽고 못사는 사이지만 헤어지면 너무나 증오하는 사이가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돈과 학문의 관계는 어떨까요? 굉장히 밀접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탐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문제고 너무 돈을 탐한다해도 문제입니다. 돈과 학문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이고 서로 필요로합니다. 저는 제가 주로 하는 역활이 인문화를 대중화하는 작업, 인문화를 공부하는 학습방법을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 역활입니다. 언젠가 사업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니까 돈을 탐하면 안된다고. 상당히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죠. 만약 제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돈이 있다면 제가 쓰고 싶은 책들, 컨텐츠들을 만들수가 있겠죠. 이게 팔릴것인지 안팔릴것인지 그렇게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가치 추구적인 그러한 컨텐츠들을 만들수가 있는 거겠죠.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돈이 학문의 큰 성과를 만들어낸 많은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아담스미스는 1776년에 국부론을 내놨습니다. 국부론이 있기전에는 경제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부론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그 뒤로 경제이론을 내놓을수 있었습니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돈의 힘이었습니다. 아담스미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교사를 했었습니다. 가정교사를 했던 집이 타운젠트백작집이었는데 이 백작이 아담스미스를 잘 봤던 모양입니다. 아담스미스가 글레스고대학의 교수일도 했었는데 그때 받는 교수연봉의 2배를 아담스미스가 죽을때까지 연금으로 타운젠트백작이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아담스미스는 먹고 살기 위해서 책을 쓰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역사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에 충실해서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같은 책들을 낼수 있었던 겁니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 정의라면 거기에 반입장이라고 할수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르크스는 독일의 트리에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자기의 정치적입장때문에 쫓겨나서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사실 마르크스가 망명하려 했던 땅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갈 배삵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영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죽을때까지 살면서 대형박물관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연구를 해서 자본론 1권을 낸거죠. 1권이 1867년도에 나왔는 데 자본론 1권을 쓰는 데 15년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영국으로 망명해서 살았던 곳이 소호라는 지역입니다. 7년을 소호에서 살면서 6명 자녀중에 3명이 죽었습니다. 병원에 갈돈이 없어서 극도로 가난속에서 연구를 하고 책을 썼던 겁니다. 그런데 먼친척이 죽으면서 유산의 일부를 마르크스한테 상속해주었습니다. 그래서 7년정도 극도로 가난속에 살다가 그 돈이 지원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론 저술에 들어가고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서양에서 최초로 성경내용이 안들어있는 책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군주론의 정확한 평가는 정치에 관한 책인데 윤리정치, 도덕정치가 아니라 현실정치를 최초로 다룬 책입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중급공무원으로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군주론은 애국심에 반로해서 나온 책이기도 하지만 구직활동에 도움이 될까해서 쓴 책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복직을 하긴 하지만 얼마 안있다 죽게 됩니다. 만약에 마키아벨리가 경제적으로 좀 더 풍요로웠다면 군주론을 안썼을수도 있지만 반대로 군주론을 비롯해서 자신이 쓰고자 했던 많은 책들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헤겔의 일생을 적어놓은 책 내용을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대중철학자를 자기의 삶의 길로 삼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책을 쓰고 그 사람들을 계몽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대중을 상대로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때는 훨씬 더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34살때 대중철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먹고 사는 수단을 찾아서 대학으로 갑니다. 오랫동안 강사생활을 하다 47살에 정식교수가 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정식교수가 되기까지 헤겔의 안정된 경제적 수단을 얻기위한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그때 문화부장관이 괴테였는데 괴테한테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제가 능력있으니 교수가 되게 해달라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비교되는 대상을 얘기하는 헤겔의 인간적인 면도 볼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경제적 서포트가 있었기때문에 나온 작품이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반대의 경우였는데 경제적으로 굉장히 궁핍했기때문에 먹고 살기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쓴책이었는데 만약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헤겔 역시 우리한테는 위대한 철학자로만 각인되어있지만 사실 먹고 살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치고 많은 연구를 했는지를 살펴보면 돈과 학문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하다는 것을 생각해볼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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