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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작가의 마른 꽃 더미

2012-12-12 04:00 | 추천 0 | 조회 16

우리가 흔히 정물화라고 했을 때는 테이블의 화병, 화병에 가득 꽂힌 꽃, 모과나 사과, 과일 그림을 떠올릴 것입니다. 정물화는 서구에서 오래전부터 그려져 온 중세나 르네상스 때 그려진 정물화는 대게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맥락에서 그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해골, 꽃, 과일, 거울이 있는 그림들을 흔히 바니타스, 메메또몰이라고 합니다. 바니타스란 인생이 유한하다. 유한한 세계에 집착하지 마라.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세계, 천상의 세계를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정물화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그림들을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말합니다. 17세기에 와서 바니타스 정물화와 함께 내 삶에 있는 물건들을 적극 찬양한다는 차원에서 그려지는 스틸라이프가 그려집니다. 이외에도 많은 정물화가 그려지고는 있지만 원래 정물화는 이렇게 종교적인 교훈을 전달해주는 매개로 삼아졌다가 그다음 차원에서는 사적인 물건, 자신의 먹을거리들을 강조하는 다소 유물론적인 차원으로 그려졌다가 지금에 와서 정물화는 작가의 세계관 투사,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등 여러 맥락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우창이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은 컨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정물화인데 사실 정물화라고 보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벽에 걸린 마른 꽃 더미입니다. 선물 받은 꽃을 거꾸로 말리면 꽃이 오래도록 지속하면서 말라가는 데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화물감으로 그렸지만 마치 코테나 목탄, 연필처럼 단색으로만 그려졌습니다. 이런 걸 흔히 단색주의, 단색화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흑백 톤으로만 이루어진 유화물감으로 그린 정밀하게 그린 그림입니다. 메마른 꽃들이 거꾸로 세워져 있고 벽에는 못질 세긴가 박혀있습니다. 어두침침한 화면에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꽃과 그림자가 들여져있는 적조한 정물화입니다. 기존에 정물화가 한결같이 풍성하고 아름답고 활기차고 싱싱한 꽃들이나 생명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정물화는 그런것들이 다 지나간 바짝 마른, 메마른, 몸에서 수분기를 다 빼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꽃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쇠락한 것, 죽어가는 것, 결핍된 것, 죽음에 가까운 것, 그것이 발산하는 어떤 기운에 이 작가가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살아있는 것들을, 활기차고 생명력 있는 것들을 찬양하지만, 이 작가는 쓰러진 것들, 나약한 것들, 죽어가는 것들, 죽음에 가까운 것들을 안쓰럽게 그림으로 되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미술은 원래부터 소멸되거나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동경을 보여줬습니다. 미라가 그렇듯 미라는 사라져버리는 누군가를 추억하기 위해서 소멸되버린 육체를 안쓰럽게 각인시킨 것이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이 이우창이라는 작가는 꽃하나를 그리더라도 일반적으로 상투적으로 그리는 꽃에서 벗어나서 벽에 걸려있는 말라가는 죽어가는 꽃을 통해서 소멸할수 밖에 없는 죽어갈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떠올릴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메마르고, 힘없고, 쓰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나 안타까움을 그림으로 표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림은 작가가 그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정물화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쓰러지거나 소멸되는 것들을 보여주는 이우창의 그림은 살아있는 것만, 활기차고 왕성한 것만 찬미하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보면 나약하고 힘없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주목을 요구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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