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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우리역사, 발해이야기

2015-01-15 04:00 | 추천 0 | 조회 7

중국 지린성 둔화의 성산자 산정에 대조영이 나라를 세웠다. 대조영은 원래 만주에 흩어있는 고구려인과 말갈족을 모아 발해를 세웠다. 이것만으로도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거기에 발해 무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에서 전해 내려온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고 고구려의 후계임을 분명히 밝혔다. 발해는 지금의 우리영토 남과 북을 비롯해 고구려의 옛 영토, 거기에 통일신라의 5배 정도로 확대해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것이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었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지도로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생활문화를 봐도 고구려 계승성을 보여준다. 발해의 풍속은 고구려나 거란과 같다라는 <구당서>의 기록도 있고, 무엇보다도 장례예법, 무덤양식 등을 보면 더 확실하다. 고구려와 같이 돌방무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온돌도 우리만의 독특한 주거문화인데 온돌도 사용했다. 러시아지역까지도 발해였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온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유물들에서도 고구려풍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당의 문화를 받아들여 다문화를 수용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발해는 그야말로 각 지역의 문화를 전부 수용하여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재창조시킨 패치워크 다문화의 전형이랄 수 있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성이 태씨다. 그 후손들인 영성 태씨 일가가 경북 경산시 남천면에 사당을 모셔놓고 지금도 모여살고 있다. 더구나 고려와 발해는 8년간이나 공존했다. 대조영은 대동강에서 흑룡강까지 즉 중국에서 러시아 연해주까지로 우리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누려본 잠깐의 시대였다. 그러자 흑수말갈과 당이 합세해서 발해를 견제하려했다. 발해의 무왕은 동생(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점령하자고 했으나. 이는 당과 등지는 일이라며 동생 대문예는 반대했다. 사실 당나라 하면 다문화의 극치를 이룬 나라로서 다문화의 막강한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던 최대 강국이었다. 특히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문물을 모두 담은 당은 막강할 수 밖에 없었고 강력한 무기와 병력을 보유하였다. 여기서 다문화강국 당나라를 우리가 유심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문화의 힘이란 이렇게 단단하고 조직력이 센 것이다. 고구려 멸망 30년 만에 고구려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군기지를 선제공격하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발해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일대사건이었다. 우리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인종, 다문화국가 발해.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모를 때 다문화는 남의 것이 되고 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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