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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의 반은 우리역사

2014-11-13 04:00 | 추천 0 | 조회 50

요나라는 당나라 멸망 후 5대10국의 혼란 속에 용병으로 끌려온 거란족이 북부 중국에 세운 왕조였다. 500여년 동안 거란족은 중국과 유목민족의 지배와 간섭을 번갈아가며 당하고 살다가 힘을 규합하여 통일한 것이 요나라이다. 요나라의 시조가 야율아보기이다. 실제로 요나라공주의 비문에서 야율씨의 조상이 고씨라고 했다. 발해역시 태씨,대씨의 조상은 고씨라고 했다. 즉 모두 고구려를 계승해서 그 강대한 힘을 계승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그리고 요나라로 천자국의 계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금나라는 쇠금자를 쓴다. 성씨로는 김씨라고 읽는다. 김씨는 중국에서는 희귀성씨 이다. 금나라를 세운 사람은 아골타다. 아골타의 시조는 중국의 금사라는 역사기록서에 보면 금의 시조는 이름이 김함보, 그는 원래 신라 말~고려에서 왔다라고 적혀있다. 완안부에 오래 살았고 아골타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사에 보면, “완안부 아골타가 황제라 칭하고 나라이름을 김씨인 금이라 불렀다. 옛날 우리나라 즉 신라땅 평주에 승려 금준이 있었는데 신라가 망하자 여진으로 도피해 살다가 그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후에 고려에 여진 사신이 와서는 “ 옛날 우리 태사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 즉 고려에서 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니, 지금도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옛날 금의 완안씨는 본시 고려인이었기 때문에 고려에 매우 후하게 대접했고 끝내 침범하지 않았다. 의주는 원래 고려땅이라 금이 요를 멸망시킨 뒤 고려에 돌려주었다” 청나라 <만주원류고>에 보면, “아골타가 세운 나라를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지금도 만주족 어느 마을에 가면 우리가 똑같은 풍속을 이어가는 민족이 있다. 청나라 만주족 황실의 성씨는 애신각라 이다. 지금도 청 건륭제 7대손이 살아있다. 이분이 김괄이라는 여성분이다. 애신각라(아이쉰 저뤄)는 만주어이고 한자로 바꾸면 금이 된다. 그래서 이 분은 김씨성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청나라 역대황제의 이름 앞에는 모두 이 ‘애신각라’가 붙어있다. 청은 조선을 부모의 땅이라고 했다.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이름을 후금이라고 지었다. 금나라가 망하고 금의 후예들이 400년 뒤 후금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 후금이 국호를 대청으로 개칭했다. 중원에 광대한 제국을 이룩한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와 같은 엄연한 단군의 후예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구리(高句麗)의 후예가 대진국(발해)이고 또 대진국의 후예가 거란족 요나라와 여진족 금나라이며, 금나라를 이은 것이 청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계보는 중국역사서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 두려워한 중국이 동북공정을 단행한 것이다. 청나라 <흠정만주원류고>에는 “청이 나라를 세우고 땅을 열어 처음으로 일어났던 동방은 왕조를 일으킨 기반으로서 땅이 신령하고 상서롭다”고 하면서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말갈, 발해, 신라, 백제, 금을 만주족의 뿌리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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