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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향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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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2015-09-21 04:00 | 추천 0 | 조회 23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입은 내 모습이 싫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도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하고 나면 소금 뿌린 배추마냥 온몸이 흐느적 거렸습니다. 차라리 부서지고 싶었습니다. 자정 넘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동료들과 함께 공장 앞 허름한 분식집으로 몰려가기도 했습니다. 백열등 노란 전구 알 아래 앉아 친구는 따라지 인생이 분하고 서럽다며 기름때 절은 주먹을 물어 뜯기도 했습니다. 작업반장님은 며칠째 어린 딸 얼굴도 못 봤다고 훌쩍훌쩍 울기도 했습니다.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싶다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업복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장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나는 책상에 앉아 밤 늦도록 대학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쏟아지는 잠이 기름때 절은 작업복보다 더 싫었습니다. 작업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어도 우리들의 평상복은 작업복과 별로 다를게 없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추레했습니다. 언뜻언뜻, 띄엄띄엄 근사한 양복에 넥타이를 꿈꾼 적도 있었습니다. 작업복을 입어도, 평상복을 입어도 도무지 가난한 티를 벗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구두 닦는 일이었습니다. 작업장 동료들의 낡은 구두 위에 총총한 별빛을 매달아주고 싶었습니다. 서럽게 뿌리 내린 척박한 땅 위에 서있는 그들의 구두만이라도 별빛처럼 반짝반작 빛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번개불에 콩 볶 듯 점심을 먹었습니다. 구두를 닦을 시간은 점심식사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오후 작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작업장 한쪽에 앉아 구두를 닦았습니다. 동료들이 우르르 다가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말렸지만, 나는 환한 웃음으로 구두를 계속 닦았습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많은 구두를 닦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60 켤레가 넘는 동료들의 구두를 모두다 닦을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구두를 닦으며 나는 나의 열등감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은 물고기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내가, 공장 직원들의 복지을 담당하는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난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작업장 동료들은 모르는 척 배시시 웃기만 했습니다. 자신들의 구두에 총총한 별빛을 매달아 주었다고 인사과장에게 말한 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습니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 증진와 복지를 위해 더 없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동료들이 나를 추천했던 것입니다. 인사과의 정식 발령이라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작업장에서 마지막 일을 마치던 날, 공장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나를 위한 송별식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구두만큼은 사장님, 회장님 구두보다 비까번쩍했다고 동료들은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작업반장님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대학생 되면 쓰라고, 동료들은 내게 만년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양복에 매고 다니라고, 진달래빛 넥타이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는 다음 날부터 직원들의 복지를 담당하는 부서로 출근했습니다. 작업복을 입지 않은 내 모습이 오랫동안 어색했습니다. 괴물 같은 기계 아래 누워 있는 동료들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무실에 편안히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미안했습니다. 새로 옮긴 부서의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업무를 보면서 짬짬이 대학입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야간 잔업도 없어서 퇴근 후에는 공부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종로에 있는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그 이듬해, 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작업장 동료들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푸른 시절은, 낮고, 작고, 초라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 학비를 벌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거의 없던 시절이 이었습니다. 사과장사를 했습니다. 싸구려 양말도 했습니다. 그림장사도 했습니다. 사과장사를 할 때도, 양말장사를 할 때도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사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알베르 까뮈를 읽고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타니스랍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풀무 야간학교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죽을 힘을 다해 책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책 한 권을 준비하는데 꼬박 7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됐다 싶어,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갔습니다. 정확히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글은 괜찮은데, 무명 필자의 글이라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원고가 한 번씩 거절 당할 때 마다, 새로운 원고를 써넣었습니다. 원고는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어긋남도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어름에 알게 되었습니다. 원고를 다섯 번 째 거절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출입문쪽에 서서, 나는 울었습니다. 2개월 동안 책 속에 넣을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픈 몸으로, 밤을 새워가며 그림 31컷을 완성했습니다. 원고를 들고, 여섯 번 째 출판사로 갔습니다. 출간이 결정 되었습니다. 나의 두 번째 책 <연탄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360만명이 넘는 독자들이 읽었습니다. 그 뒤에 쓴<행복한 고물상><곰보빵><보물찾기>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건,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아픔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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