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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과 폭력으로 점철된 우리 영화 속에서
2021-01-13 05:00:00 | 추천 0 | 조회 8235
이어영 기자
창조/창의력
얼마 전에 우리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워낙 인기가 있던 영화였습니다.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선택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영화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화 관객 대부분을 차지했던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멋지다’는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 영화 대부분은 복수와 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TV라는 매체의 특성상 폭력의 수위가 낮을 뿐, 줄거리 구조는 복수와 폭력이 주조를 이룹니다.
어느 샌가 복수와 폭력이 우리 대중문화의 핵심 코드가 돼 버렸습니다.
물론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에 희생당한 사람을 위해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한 때의 유행은 아닙니다.
대중문화계에서 언제나 인기를 끌어왔던 소재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복수와 폭력에는 전과 다른 패턴이 있습니다.
우선은 당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보복한다는 점입니다.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것으로는 성이 차질 않는 모양입니다.
최근 우리 영화의 폭력성 논란이 전례 없이 고조된 것 역시 이 패턴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복을 위한 폭력을 지극히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점도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잘 생긴 주인공이 사랑하는 이의 복수를 위해 나서면 그의 불법이나 잔학무도함도 아름다움으로 바뀝니다.
우리 대중문화가 복수와 폭력에 빠진 이유는 뭘까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이 계기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사회의 범죄가 갈수록 극악무도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크게 보자면 복수가 용인되고, 폭력이 절실해지는 우리 사회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대중문화는 결국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복수를 다짐하고 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고, 적은 가차 없이 쳐야 한다는 논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수와 폭력을 권장하는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복수와 폭력은 더 강한 복수와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다행인 것은 한 사회에서 복수와 폭력의 강도가 더 심해질수록 그에 반해 관용과 화해를 부르짖는 목소리도 높아지게 마련이라는 점입니다.
복수와 폭력은 그 악순환이 거듭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매몰비용(sunk cost)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동네 빵집을 얼마간 하던 자영업자가 장사가 안 돼 업종 전환을 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냉면 전문점으로 바꿔 재개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외부 간판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도 모두 바꿔야 합니다.
재료도 다시 사들여야 합니다.
냉면 전문점 개업 여부를 고민할 때, 동네 빵집을 하는 데 들어갔던 돈을 고려를 해야 할까여? 해서는 안 될까요?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고려합니다.
빵집에 들어간 돈도 비용이니까, 돈을 웬만큼 많이 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는 빵집 비용을 감안하면 안 됩니다.
그건 이미 발생한 비용입니다.
어쩔 수 없는 비용입니다.
냉면 전문점 개업 여부는 새로운 시설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과 개업 이후 발생할 수익만을 비교해 결정해야 합니다.
빵집에 들어간 돈을 매몰비용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사로 매몰비용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만난다면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가 들게 마련입니다.
그게 아까워서, 별로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몰비용을 고려한 비합리적인 결정입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고 나서도 상대방에 대한 증오의 감정 때문에 쉽게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새롭게 만난 상대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때도 있습니다.
이 때는 증오의 감정 자체가 매몰비용입니다.
이것도 미련한 처사입니다.
우리 영화에 나타난 보복과 폭력의 트랜드.
트랜드라고 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그것 또한 매몰비용이란 관점에서 다시 한 번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에게 받은 상처를 보복과 폭력으로 갚아야하는 대중문화 코드, 어떻게 읽어야 할까?
여려분도 한번 고민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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