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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2019-09-02 05:15:00 | 추천 0 | 조회 2342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얼굴이 두껍거나 속이 시커멓든가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한다. 

일명 후흑학(厚黑學)으로 잘 알려진 이종오(李宗吾)의 주장입니다. 

중국 신해혁명 당시 동맹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던 이종오는 얼굴이 두껍고(厚顔), 마음이 시커먼(黑心) 사람들이 중국 역사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남의 눈치나 체면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흑(厚黑)의 대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꺼운 얼굴로 방패를 삼고 시커먼 마음으로 창을 삼아 앞으로 전진 하라! 예의와 염치,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중국의 유교적 봉건주의 사상에 반기를 들고 실리와 실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개화기 중국에서는 상당히 새로운 각도의 이론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상 얼굴 두껍고 속이 시커먼 리더 중에 한명을 꼽으라면 단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일 겁니다. 

유비는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마음과 표정관리에 있어서 거의 후흑학의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리 저리 쫓겨 다니며 눈칫밥을 먹어도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대가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대성통곡하여 위기를 모면했던 표정관리의 대가였습니다. 

특히 동가식서가숙의 넉살과 뻔뻔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이란 말이 나온 배경은 이렇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백과전서 중에 하나인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동가식서가숙이란 어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산동성의 옛 지명인 제(齊)나라에 어떤 처녀가 있었답니다.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 처녀에게 어느 날 두 집안에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동쪽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볼 것이 없으나 부잣집 아들이었고, 서쪽집의 신랑감은 인물은 뛰어나지만 집안은 볼 것 없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인물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부를 선택할 것인가? 

처녀의 부모는 처녀에게 뜻을 물었고 처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면 안 되나요?.” 

일명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이란 말이 나온 부분인데요. 

집안 좋은 총각과 낮 생활을 같이하며 부를 누리고, 얼굴 잘 생긴 총각과는 밤 생활을 같이 하며 사랑을 즐기고 싶다는 대답이었죠. 

이런 실리적인 생각은 옛날 일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면 동가식서가숙의 대답을 뺨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연예는 마음에 들고 잘생긴 사람과 하다가, 결혼은 부모님이 정해 주신 유능한 사람과 하고 싶다는 유비에 버금가는 후흑의 대가 같은 대답 말입니다. 

어쩌면 현실적이고 똑똑한 대답 같기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택하겠다는 어딘가 젊은이다운 패기가 느껴지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 

너무 감상적인 생각인가요? 


조선시대 수필집 <한거만록(閑居漫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태조(太祖)가 개국한 다음 조정에서 재신(宰臣)들을 불러 정부(政府)에서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한 때는 고려왕조에 충성을 맹서했던 대신들이었지만 새로운 정권에 동조하며 새로운 지위를 약속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연회에는 설매(雪梅)라는 기생이 있었습니다. 

그 기생은 뛰어난 미모 덕에 많은 사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기생 역시 어느 사내든 마다 않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어떤 늙은 정승이 술이 취해서 설매(雪梅)라는 기생에게 치근대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아침에는 동가식(東家食)하고 저녁에는 서가숙(西家宿)하는 기생이니 오늘 밤에는 이 늙은이의 수청을 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자 설매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기생이, 어제는 왕 씨를 모시다가 오늘은 이 씨를 모시는 정승 어른을 모시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늙은 정승은 얼굴은 벌게지고 고개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고, 어느 대신은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날 주군을 버리고 새로운 주군을 모시는 대신들이 기생의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 말에 모두 맥을 못 추었던 것이죠. 


우리는 어쩌면 동가식서가숙에 익숙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명분과 신의 보다는 실리와 이익을 위해서 동쪽 집과 서쪽 집을 왔다 갔다 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꾸는데 익숙해진 그런 삶 말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충성을 맹서하며 모든 것을 주었던 동쪽 집에, 오늘은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며 모든 수사(修辭)를 동원하여 동쪽 집을 비난하고, 어제 몸담았던 조직에 적이 되어 칼을 들이대는 품위도 명분도 신의도 없는 그런 삶의 방식 말입니다. 

왕 씨를 섬기든 이 씨를 섬기든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지난날 한번 신의를 맺었던 사람을 비난하고 호도하는 것은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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