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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활용하라 3
신동기

페르시아 전쟁의 백미인 살라미스 해전이나 이순신 장군의 해전 역시 지형을 유리하게 이용한 승리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10번 싸워 10번 모두 승리로 장식한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 두 번의 큰 싸움에서 또 모두 승리한다
 이 12번의 싸움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낸 싸움은 이순신 장군이 운명을 달리한 노량해전이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싸움을 벌였던 전쟁은 명량해전이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직되었다 복직되고 난 뒤 첫 번째 치룬 싸움이 바로 이 명량해전이다.

원균이 지휘했던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을 때 불과 13척의 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133척의 일본 전함과 싸움을 벌여 적선 31척을 수장시키고 일본군의 서해 진출을 좌절시킨다.
13척의 배로 133척의 배와 싸워서 승리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형의 이용이었다.
 
이 명량해전은 조선군 전함 13척과 일본군 전함 133척의 배가 맞붙어 싸운 해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투 현장에 있었던 일본의 전투함은 133척이 아닌 300여척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일명 울둘목이라고 불리는 진도와 해남의 화원반도 사이의 명량 해협 서북쪽으로 일본군을 유도하자 좁은 해협 때문에 일본군의 배중 아다케라는 대형 군선들은 그대로 해협 바깥에 머물러 있고 중소형 군선인 세키부네라는 배들만 해협을 통과해 조선군을 공격해 왔다. 그 숫자가 133척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해협 서북쪽의 우수영 앞바다에서 세키부네 133척과 초기에는 불리하게 전투를 진행하다,
조류가 서북방향에서 남동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기회로 13척 전함 전체가 한꺼번에 적선으로 돌진해 일본 전함 31척을 격파한다.
칠천량 해전의 승리로 우쭐해 있던 일본군은 예상 밖의 전황에 후퇴를 한다.
이로써 황해로 진출하려던 일본 해군의 정유재란 이후 전략은 좌절되고 만다
 
이순신 장군은 12번 전투에서 가장 극적인 싸움이었던 명량해전에서 명량해협이라는 협수로를 이용해 300백여척에 달하는 일본 전력을 절반 이하밖에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조류를 이용해 일시에 공격하는 전술을 폈다. 바로 주위 환경을 이용한 대승이었다
 
페르시아 전쟁 3차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해군에게 승리를 거둔 살라미스 해전 역시 지형지물을 이용한 경우이다.
페르시아 전쟁(BC492-BC479년)의 결정판인 살라미스 해전은 전력상으로만 볼 때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군에게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스 전함이 378척인데 반해 페르시아는 1,200여척으로 거의 4배에 달하는 대군단이었다.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BC524년경-BC460년경)는 전력상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테네 서남쪽 아래에 있는 살라미스 해협으로 페르시아의 대군단을 끌어들인다.
해협으로 유인된 페르시아 군단은 절대적인 수적 우세가 오히려 좁은 바다에서 작전을 펴는데 장애로 작용한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에 전함 200여척이 침몰되거나 나포당하는 패배를 맛본다.
그리스 연합군은 40척 정도의 배를 잃었을 뿐이었다.
이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로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군 대부분을 철수한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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