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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고정관념에서 나온다
신동기

도시국가 로마의 영토 확장은 사실 공화정 시기(BC509-BC27년)에 대체로 마무리된다. 이 시기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그 다음 지중해 패권에 도전하여 성공한다. 이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는 전쟁이 바로 ‘페니키아인과의 전쟁’이라는 의미의 포에니 전쟁(BC264-BC146년)이다.
그리스 지역은 지형이 험난해 농사를 지을만한 변변한 땅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그리스인들은 배를 타고 지중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농사를 지을만한 땅을 발견하면 그 곳에 정착해 나라를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수많은 국가들이 바로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이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에 형성되어 있는 도시 국가들 대부분은 그리스 민족들이 만든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프리카 북안 튀니지 지역에 자리 잡은 카르타고는 예외였다.
팔레스타인 땅 연안지역에 일찍부터 문명을 이루었던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 북안 중부 지역에 BC12세기 무렵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가 바로 카르타고이다.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잡을 무렵인 BC3세기 무렵에는 이미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의 전성기가 지난 뒤로 당대 지중해 해상 최강국은 바로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싸움은 참으로 우연히 시작되었다.
그 전 타렌툼(BC280-BC273년) 싸움도 그렇고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연이 국가의 운명을 튼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한 국가의 역사나 개인의 삶의 과정 모두 항상 우연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그 우연을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는 자는 주도권을 쥐게 되고 우연을 애써 무시하려 들거나 회피하려는 자는 기회를 잃거나 종속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는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는 시칠리아 섬이 있다.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 사이가 바로 메시나 해협인데 이 해협의 폭이 좁은 곳은 불과 3.2km밖에 안된다.
좁은 해협인 만큼 물살이 빨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 해협에 괴물인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살고 있어 오디세우스를 포함해 그리스 신화의 많은 영웅들이 여기에서 혼쭐이 난다.
 
포에니 전쟁이 일어날 때 시칠리아 섬 상황은 동북쪽에는 메시나라는 그리스계 폴리스 국가가 있었고, 동남쪽에는 같은 그리스계 시라쿠사라는 나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섬 서쪽지역은 아그리젠토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카르타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라쿠사가 메시나를 공격해 와 메시나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지배권을 확정짓는 타렌툼 전투(BC280-BC273년)를 끝낸 지 불과 9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로마가 일단 메시나와 시라쿠사의 싸움에 개입하게 되면 결국 지중해 최강 해상국인 카르타고와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메시나의 구원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시칠리아 섬 내의 균형이 깨져 섬 동쪽 지역까지 모두 카르타고가 차지하는 상황이 되면, 메시나 해협 불과 3.2km를 사이에 두고 더욱 강대해진 카르타고를 로마가 상대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좋은 안이 없으면 나쁘지 않은 안이 정답이다.
로마는 덜 위험한 상황, 단 몇%의 낮은 가능성이라도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메시나의 구원 요청에 응하는 것이었다.
 
포에니 전쟁은 118년간에 걸쳐 진행되지만 118년 내내 싸웠던 것은 아니고 1차(BC264-BC241년), 2차(BC219-BC202년), 3차(BC149-BC146년)로 나누어 진행된다
 
1차 싸움에서는 11차례의 큰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중에서 로마는 3번째, 6번째 그리고 10번째 싸움에서 패하고 나머지는 모두 승리한다.
이 1차 싸움 결과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가르는 시칠리아를 로마의 지배 영역으로 확보하고, 로마의 힘을 보고 놀란 주변의 사르데냐, 코르시카와 같은 큰  섬들은 카르타고와의 동맹에서 로마의 동맹으로 돌아선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이 뭍에서만 싸워왔던 로마가 해상강국인 카르타고를 어떻게 해전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11차례 싸움이 해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육전도 있었고 해전도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바다를 사이에 둔 두 국가 간의 전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상 전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애초부터 육전은 불가능한다
 
로마가 최강 해상국인 카르타고를 이긴 것은 이를테면 ‘고정관념’의 승리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육전에서 승리한 로마는 본격적인 해전은 아니지만 세 번째 싸움인 해전에서 해군담당 집정관인 스키피오가 리파리라는 섬을 점령했다 카르타고에 포로로 잡히고 함대는 급하게 메시나 항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 때 로마 원로원은 후임 해군 담당 사령관을 새로 선임하지 않고 육군 담당 집정관인 두일리우스를 겸직으로 발령낸다. 갑작스럽게 해군까지 담당하게 된 두일리우스는 어떻게 하면 카르타고 해군을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로마는 육전에서는 50년 이상의 실전을 통해 천하무적의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해전은 이제 겨우 전투함을 건조해 배 방향키나 잡을 정도였다. 이 상태에서 카르타고와 맞붙는다는 것은 사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두일리우스가 내린 결론은 로마군은 육전에 강하니 전투를 육전처럼 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일명 까마귀발이었다.
뱃머리에 가까운 돛대에 무겁게 제작된 사다리를 함께 세워놓고 적함에 접근해 이 사다리를 상대방 배와 연결하여 다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다리는 180도 회전하게 만들어 적이 뒤에서만 오지 않으면 좌우 앞 어느 방향으로나 바로 떨어트려 두 배를 연결할 수 있도록 하고, 사다리 끝에는 날카로운 갈고리를 달아 한번 적의 갑판에 찍히면 절대 빠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기존의 육전 전투 방식 고수에 집착한 두일리우스의 아이디어는 기적을 낳았다.
해상 전투 경험이 전무한 로마군이 군선 수로만 해도 1.5배나 되는 해상강국 카르타고를 대파한 것이다.
카르타고는 이 전투에서 시칠리아 주둔 해상 병력의 1/3을 잃는 큰 손실을 본다
 
로마의 승인은 다름 아닌 해군 담당 집정관을 겸임한 육군 담당 집정관인 두일리우스의 이른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육전에서 잘 싸워왔으니까 이번 해전도 육전 식으로 해 보자는 고정관념이었다.
전투 환경을 육전처럼 바꿀 수만 있다면 해전에서도 로마가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이 적중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고정된 인식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변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빠른 속도가 미덕이 된 20세기 말 21세기 초 들어서는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 확보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고정관념’을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위 ‘고정관념’이라는 어휘에 대한 부정적 의미만 제외한다면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고정된 인식 자체는 사실 가치 중립적이다. 좋고 나쁘고 올바르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선악(善惡)이나 정부(正否)의 문제라면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인식 틀 자체는 오히려 선이고 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고정된 인식이 없으면 세상 사람들은 사회 현상, 자연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모든 이론들이 사실 사회현상과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고정된 틀이고 연역과 귀납을 통해 확립된 인식체계이다.
바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쿤이 이야기 한 ‘패러다임(Paradigm)’이다
 
문제는 적용에 있다.
기존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고정된 인식을 주변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시각에서 적용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창의적인 활동이 된다.
중소기업이 오랜 시간을 들여 구축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y) 또는 핵심 기술(Core Technology)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역발상을 포함한 새로운 발상과 응용으로 끈질기게 다양한 상품화를 시도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창의적인 활동에 해당된다. 
 
로마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인 중무장 보병의 전투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전투 환경 자체를 육전 환경으로 바꾼 것은 과거의 장점을 고집하면서 오히려 그 대상인 환경을 바꾼 창의적인 경우이다.
해전 전문이 아닌 육군 담당 집정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으리라

사업, 성공,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