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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이중적 잣대
제윤경

안녕하십니까? 에듀머니 대표 제윤경입니다.
이번 시간 주제는 금융의 이중적 잣대입니다.

저축은행의 문제가 2010년부터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예금자 보호 한도를 넘어서거나 후순위채권 투자자에 대한 구제문제는 여전히 여러 사회적 장벽 하에 미해결 상태로 남겨져 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에 대해 그들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는 자기 책임에 대한 사회적 정서 또한 그대로이다.
즉 투자자들은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인지하고 적절히 대처했어야 하며 투자의 결과는 고스란히 투자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평생 모은 돈을 예금자 보호 한도 이상의 예금과 후순위 채권에 투자함으로써 되찾지 못하고 있다.
향후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해당은행의 예금자와 투자자도 같은 운명에 놓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금자와 투자자는 은행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이다.
은행은 그들에게 돈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닌 채무자이다.
예금과 투자라는 말로 다르게 이해되지만 본질적으로 채권자와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은행이 채권자이고 금융소비자가 채무자일 때 채무자가 채무 상환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은행은 어떻게 해서든 채무자로부터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하여 기를 쓴다.
연체에 대한 통보를 하기 시작하고 독촉하게 된다.
그 조차도 연체가 길어지면 채권 추심 기관에 채권을 매각해 버린다.
은행이 받을 돈에 대한 권리를 제 3의 기관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매각하는 과정에서 돌려받을 돈 전체를 받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려 받기 어려운 부실 채권을 팔아치우게 되면 은행은 연체율을 줄일 수 있게 되고 건전성에 대한 평가에서도 위험을 비껴간다.
또한 아예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채 원금 일부를 건진다.
그것도 그간 이자를 챙겨왔던 것을 감안하면 큰 손해는 아닐 수 있다.
제 3의 채권 회수 기관은 은행보다 좀 더 집요하게 추심을 한다.
이자는 차치하고 원금이라도 받아낼 수 있게 되면 채권을 싸게 매입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큰돈을 남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추심직원들에게 인센티브도 돌아간다.
당연히 추심 과정은 은행에 비해 더 집요할 수밖에 없어진다.
받아내는 만큼 남는 돈이고 추심원의 연봉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서 또한 채권자의 빚 독촉에 대해 관대하고 오히려 채무자에 대해 갚을 만큼 빌리지 않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다시 저축은행과 예금자, 투자자들의 관계로 돌아가 보자.
저축은행은 채무자이고 예금자 투자자들은 채권자이다.
저축은행은 갚을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린 것이고 예금자 투자자들은 당연히 저축은행의 신용을 믿고 빌려주었다.
앞선 은행과 대출자의 관계와 달리 은행과 투자자의 관계에서는 다른 사회적 정서와 관념이 힘을 발휘한다.
채무자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가 충분히 채무자의 신용을 평가해 보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으니 손해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채권자가 저축은행이라는 채무자에게 받아야 할 돈을 집요하게 받아낼 방법도 없다.
그저 자신의 무지와 판단착오를 탓해야 한다.
이것은 완벽히 불공정한 관계이다.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에 대해 이중적 잣대로 오로지 금융소비자만 무한 책임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만약 투자자 책임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맞다면 채무 상환 불능 상태인 채무자에게도 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즉 채권자인 은행이나 카드사가 투자자이기 때문에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 줄 때 충분히 채무 상환이 가능한지 철저히 판단하고 그 결과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 질 때는 채권자 책임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채권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투자할 때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은 회피 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무자를 괴롭히지 않는가.
금융의 이러한 이중적 잣대를 우리는 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저축은행의 다시 부실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이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금융질서가 사실상 약자에게는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때이다.

감사합니다.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