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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달력
이철환

내가 글을 쓰는 작업실 창밖으로
커다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손에 닿을 듯 아주 가깝습니다.
낮이 밤으로 스미는 것처럼, 밤이 낮으로 스미는 것처럼
나무들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울지도 않습니다.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물기 없는 땅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잎사귀를 몽땅 떨구어 버립니다.
그런 나무들을 바라보며,
채우기 위해서는 버려야한다는 진실을 배웁니다.

때가 되면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나는 슬픔 너머의 슬픔을 봅니다.
뱃종뱃종 울어대는 새소리에서,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듣습니다.

밤나무는 나의 달력입니다.
산 밑에서 17년을 살았으니,
창문 밖 밤나무만 보고도 열 두 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굴에 나이테를 만드는 사람이
몸속에 나이테를 만드는 나무를 어찌 다 알겠습니까.
나무의 비밀을 짐작할 뿐입니다.

밤나무 싹이 나오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고. 밤꽃이 피고. 밤송이가 매달리고.
쓰름매미 소리 잦아들면 알밤들이 톡톡톡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밤나무 가지 위에 흰 눈이 쌓입니다.
달마다 변해가는 밤나무의 모습을 보고 열 두 달을 짐작할 뿐입니다.

불을 켜기에는 환하고 불을 끄기에는 어두운 어스름 시간,
처연하게 서있는 밤나무의 모습은 성지로 떠나는 순례자와 같습니다.
밤나무 달력은 숫자로 써놓은 달력과는 많이 다릅니다.
자로 잰 듯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더 인간적인 달력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도
밤나무 달력을 한 그루 심어 드리고 싶습니다.

산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아이들을 만납니다.
하늘소를 만나고 땡땡이 옷을 입은 빠알간 무당벌레도 만납니다.
풀무치, 풍뎅이, 달개비꽃, 싸리꽃, 눈꽃
조팝나무, 팥배나무, 쑥국새, 멧새......
나는 이 아이들에게 많은 걸 배웁니다.
자신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우는 법을 배웁니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을 버려야한다는 것도 배웁니다.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어보셨는지요.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참 좋습니다.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왈츠보다 시보다 더 서정적입니다.
빗방울과 나뭇잎이 박수치는 소리를 듣노라면
잠결에도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길섶에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이 되는 꽃. 눈물이 되는 꽃. 전사의 총칼보다 푸르고 강한 꽃.
꽃을 보고 계절을 아는 이들에게
꽃은 삶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들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김밥을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김밥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사람들 가슴 속에 소풍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밥을 만들 때 김밥 속에는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치자색 단무지와 계란, 분홍색 햄, 초록색 시금치나 오이, 주황색 당근......
형형색색의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니까 김밥 속은 앞 마당의 꽃밭처럼 화려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김밥 속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김밥은 빨리 상해버린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 사는 것도 꼭 김밥속 같습니다.
삶이 화려해질수록, 그 사람의 영혼도 빨리 상해버리니까요.
화려해지고 높은 곳에 오를수록, 사람들은 낮아질까봐, 초라해질까봐
늘 불안해하니까요.

여러분과 저는 항상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만 받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너무 많은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불 하나를 켜면, 별 하나가 멀어집니다.

여러분과 나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꽃을 피워야만 사랑 받는 장미도 되지 말고,
언제 꺽일지 몰라 불안해하는 백합도 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없이 피고 지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아름답게 흔들릴 줄 아는 들꽃.
아무 곳에나 피어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않는 그런 들꽃 말입니다.

제비꽃, 달맞이꽃 패랭이꽃, 자운영꽃, 아기별꽃, 양지꽃, 은방울꽃......
들판 가득 엄마의 눈물처럼 피어있는 이 꽃들은,
여치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제 영혼의 키를 키울 줄 아는 들꽃이랍니다.
보슬보슬한 흙 위에 누워, 밤하늘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눈빛 맑은 들꽃이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꽃이 되고 싶으신지요.
여러분 가슴속 앓이앓이가 꽃이 될 거라 믿겠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강물보다 짧은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눈비 뿌리는 날에도, 여러분이 따순 밥처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으로. 눈빛으로. 소리없이. 환하게 말입니다.

이철환